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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소통판으로 소통의 문턱을 낮춘 프로젝토리
2021. 2. 3.NC문화재단이 작년에 런칭한 청소년 창의공간 ‘프로젝토리’는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내주신 덕분에 성공적으로 운영될 수 있었습니다. 현재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잠시 휴관을 하고 있지만, 곧 돌아올 멤버들을 위해 재정비의 시간을 갖고 있어요.
휴관 기간 동안에 프로젝토리에는 의미 있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1층 로비와 프로젝토리 공간에 의사소통 장애인을 위한 의사소통판*이 비치된 것인데요, 누구나 자유롭고 수평적으로 소통하는 커뮤니티를 지향하는 프로젝토리의 철학이 담긴 작지만, 큰 변화였죠.
*의사소통판(communication board): 말이나 글을 사용할 수 없는 사람들의 원활한 소통을 돕기 위한 보완대체의사소통(AAC, Augmentative and Alternative Communication) 도구의 하나로, 판(board) 위에 사진이나 그림, 글자와 같은 상징을 배열한 후 손이나 신체의 한 부분을 이용하여 이를 지적함으로써 의사를 표현할 수 있도록 한 것.
사실 운영팀은 프로젝토리를 오픈하기 전부터 의사소통에 장애가 있는 멤버의 접근성과 편의성에 대해 고민을 해왔어요. 언어 장애(상대의 말을 이해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어려움), 말소리 장애(특정 자음이나 모음의 발음이 부정확함), 말더듬증(말이 비정상적으로 자주 끊어지거나 말의 속도가 불규칙함) 등의 장애를 가진 청소년은 멤버십 가입부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소통의 장벽을 경험할 것이기 때문이죠.
의사소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재단에서 개발한 ‘나의AAC’ 모바일 앱이나 기존 의사소통판을 활용할 수도 있지만, 이것들은 일상에서 주로 쓰이는 표현 위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프로젝토리 같은 특수한 공간에서는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이 한정적이었어요.
그래서 운영팀은 프로젝토리에서 사용되는 의사소통판을 따로 제작하기로 결정했고, 몇 달에 걸친 조사와 검토, 시안 제작 과정을 거쳐 의사소통판을 완성한 것이죠. NC문화재단은 그동안 의사소통 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보완대체의사소통 지원사업을 지속해 왔고, 관련 기관들과 꾸준히 교류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속하게 의사소통판 제작에 돌입할 수 있었어요.
프로젝토리 의사소통판은 처음 공간을 방문한 의사소통 장애인를 위한 ‘공간 안내용’과 정식 멤버로 가입한 이후 프로젝트 활동 시 사용하는 ‘활동 공간용’과 ‘재료/도구용’ 등 3가지 버전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공간 안내용’ 의사소통판은 프로젝토리 1층 로비에서 일어나는 소통을 위한 것입니다. 이동이 불편한 방문객이 엘리베이터를 찾는다거나,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 지하로 내려가야 한다거나, 갑자기 쏟아진 비 때문에 우산을 빌리는 등 다양한 상황을 대비했어요.
‘활동공간용’과 ‘재료/도구용’ 의사소통판은 프로젝토리의 다양한 공간과 130여종의 도구 및 재료가 표현된 그림상징으로 가득합니다. 프로젝트에 필요한 도구나 재료를 크루에게 요청할 때나 멤버들과 프로젝트에 대해 의견을 나눌 때 이 의사소통판을 사용하면 효과적으로 소통이 가능하죠.
각 의사소통판은 그림과 글자가 함께 쓰여 있어서 쉽고 빠르게 내용을 파악할 수 있어요. 도구나 재료를 표현하는 부수어휘(녹색 영역)와 주요 행동을 표현하는 핵심어휘(주황색 영역)를 좌우로 나누어서 신속하게 기본적인 문장 구조를 만들 수 있도록 배치했습니다.
의사소통판의 그림상징은 사용자가 자유롭게 교체할 수 있습니다. 필요한 그림을 넣고 뺄 수 있기 때문에, 자주 쓰는 어휘를 앞장으로 옮기거나 순서를 바꿀 수도 있어요. 기존 판에 없는 상징이 필요하다면 직접 만들어서 추가하는 것도 가능해요.
뿐만 아니라 사용자가 양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탁상 달력 형태로 제작했기 때문에 의사소통판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몸짓언어(제스처)와 병행해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의사소통 장애가 있는 멤버가 자유롭게 프로젝토리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멤버를 서포트 하는 크루들의 배려도 중요합니다. 크루들은 장애에 대한 편견을 최소화하고, 그들을 멤버이자 인격체로서 존중해야 하죠.
그래서 프로젝토리 운영팀은 의사소통판과 별개로 크루를 위한 ‘의사소통 매뉴얼’을 따로 제작해 숙지하도록 했습니다. 의사소통 장애인의 소통 방식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어야 더 효과적으로 관계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프로젝토리 의사소통판은 고려대학교 프로젝트팀 CommA(콤마)가 제작을 진행했습니다. CommA는 의사소통장애인의 사회 참여를 돕기 위해 결성된 팀인데요, 마포구 일대 편의시설에 AAC 상징판을 배포하고 캠퍼스 내에 AAC 존을 설치하는 등 멋진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또 제작 과정에서 언어치료 AAC 센터 '사람과 소통'도 상징 제작 및 자문 등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프로젝토리는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소통하며 서로 차별하지 않는 커뮤니티를 지향합니다. 이곳에서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멤버들이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무한한 가능성을 펼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